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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잘된 삶'인가 '잘못된 삶'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이동권' , '오줌권'에 대한 이야기 ,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존엄이란 무엇인지, 사람의 신체적 능력과 매력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심도깊은 이야기를 해준다. 

작가의 의견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철학적, 의학적, 법적인 요소가 섞여 있어서 쉽게 읽힌다고는 하지 못하겠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과 입장을 이해하는데에 더 도움이 되었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장애인들을 '그들'이라고 썼다가 그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고쳤다. '그들'이라고 쓴 게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타자화 시키고 '우리'가 아닌 '그들' 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아서 고쳤다. 나는 법적이나 사회적으로는 비장애인에 속하겠지만 언제든지 장애가 생길수도 있고, 책에서 얘기하듯이 신체적 · 정신적 특성에 대해 좋은가 혹은 중립적인가 정확히 얘기하지 못하며 그것이 장애다 아니다 라고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을텐데 말이다. 

'장애'가 무엇인지 검색을 해보면,

[심리적, 정신적, 지적, 인지적, 발달적 혹은 감각적으로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거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

라고 하는데, 이걸 보면 나도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아래는 좋은 구절

줄친 부분이 너무너무 많아서 일부분만 적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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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공연에서는 자신이 그 공연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역할도 없이, 개성이나 존재감도 없이 특정 집단(장애인, 노인, 환자, 빈자, 노숙인)이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만 도구처럼 활용된다.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이 집단은 철저하게 추상화, 익명화, 기호화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쌍함'을 전달하는 요소들, 즉 빈곤함의 정도, 장애의 심각성,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으로만 존재가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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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이끌릴 때 그 사람이 나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에게 이끌리고, 내가 더 크게 이끌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상대방도 나에게 더 강하게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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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가 장애아이든 아니든 자녀를 아예 낳을 생각이 없었는데, 의사의 실수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경우를 '잘못된 임신' 소송, 부모가 아이를 낳고 싶긴 했으나 장애아라면 낳지 않으려 했는데 의사가 판단을 잘못해 장애아를 낳은 경우를 '잘못된 출산' 소송, 의사의 판단이 틀려 부모가 출산한 장애아 스스로가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를 '잘못된 삶' 소송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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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떤 신체적 · 정신적 특성이 좋은가 혹은 중립적인가 그 자체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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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가 혹은 중립적인가는 결국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관이 반영되므로 시대에 따라 특정 특성의 가치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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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추구는 자신을 '무엇이 아님' 이라는 결여가 아니라 '무엇임' 이라고 적극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무엇이 '아닌 것' 이라는 소극적 형태로는 그와 같은 스타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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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잘못된 삶을 정체성의 일부로 '수용'하는 일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정신승리'가 구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삶을 잘못되었다고 규정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야 말로 어쩌면 이러 '정신승리'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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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행동을 효과적으로 취하는 실용적 합리성의 결핍이야말로 정신질환의 한 표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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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냐 아니냐는 단지도덕성의 문제만 걸려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익이란 것이 자신의 생존이나 기본권과 직결되어 있는 경우 그 합리성의 결핍이란게 결국 정신질환의 한 부분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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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병리적 의식'의 바탕에 오랜 시간 누적되어온 차별이나 배제의 사소한 경험들이 납처럼 눌러붙어 있다면, 유선 씨의 '피해망상'을 그녀가 살아온 삶의 경험과 완전히 독립된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그저 약물로 소거하면 그만인 병적인 증상으로만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녀의 정체성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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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행동과 특성을 이해할 때 '왜?'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어려운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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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장애인,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 등을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주류 집단에 동화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커버링covering' 압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커버링은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인 특성을 '티 내지 말라'는 요구다.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여성의 몸이 가진 특별한 상황(생리나 출산 등)을 티내지 말 것을 아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조직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지만 장애로 인한 특성을 숨기기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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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특성을 티 내면 그 특성에 대해 '그것이 벼슬이냐' 라고 비아냥대는 경우를 많이 보았음. 그걸 커버링이라고 한다는 걸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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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장애인들은 더 이상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거나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읍소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를 계단과 횡단보도의 턱에 묶어두지 말라"며, "집 안에 더이상 가두지 말라" 며 외부의 침해로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권'을 행사했다. 즉 무엇을 '해달라' 가 아니라 '하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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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길거리에 나오는 것, 즉 이동을 위한 시설물은 장애인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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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남성과 다른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고 생리를 하고 출산을 한다. 평균 신장이나 근력도 남성과 다르다. 소방관을 뽑을 때 완전히 똑같은 체력 검정을 요구하거나, 생리휴가나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사실상 해당 직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는 인종차별보다는 장애인차별과 유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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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잘 모르겠음.. 소방관을 예로 들었는데, 소방관도 여러 업무가 있겠지만 현장에 가서 사람을 구하고 건물을 오르고 무거운 장비를 짊어져야 하는 업무의 경우,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체력수준이나 근력수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과 남성에 대해 다른 체력 검정 수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업무별로 요하는 체력 검정 기준을 다르게 두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른 예시를 들어주면 더 이해하기 좋을텐데...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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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장애인의 신체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런 종류의 미적 경험은 그 대상이 전적으로 '타자'일때에만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나의 삶과 무관한 장애인의 신체, 주름지고 지혜가 가득한 노인의 얼굴, 아침 일찍 출근해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의 땀방울 같은 것.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는 자기기만을 불러온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내 삶으로 들어올 때면,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충동이 우리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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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나라들을 지배해야 할 대상, 열등한 대상으로 보면서도 미적으로 열망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일맥상통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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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문제는 신체에 대한 욕망에서 그 사람의 개별적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고, 결국 '예외적으로 장애인을 사랑해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있는 타자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도취된다. 과연 디보티들만 그럴까? 우리는 종종 우리자신에게서도 이런 그림자를 가진 사랑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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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대상인 경우 외에도, '연애를 하는 자기자신', 혹은 '상대방에게 이렇게 헌신적인 나' 에 취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정말 꼴배기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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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콩깍지'는 어쩌면 알 수 없는 비합리적인 힘에 도취된 상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섬세하게 분별한 그 사람의 미적 요소들이 완전하게 통합된, 그 사람의 초상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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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사람의 초상화를 이해하고 나면 오점을 발견하더라도 더 벗어나기 힘든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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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가 개개인의 상황을 지나치게 특정한 집단 정체성으로만 축약하며, 한 사람이 여러개의 정체성과 상호 교차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구분선들이 현대 사회에 들어 해체되고 있다는 점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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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조건이나 속성에만 집중하는 정체성 정치가 왜 나쁜지 설명해주어서 좋았다. 나는 어디에선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약자일수도 있고, 또 다른 어디에선 동시에 사회적으로 유리한 강자일수도 있다. 한 인간은 여러가지 정체성을 가지며, 눈에 보이는 속성들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안다면 맥락없는 혐오를 줄이고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텐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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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장애였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게 될 수도 있고, 장애가 없는 사람도 노년이 되면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호 교차성과 비일관성을 정체성 정치는 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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