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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전에 제목만 봤을 때 '시선'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의미의 '시선'인 줄 알았는데

사람 이름이었다.

'심시선'이라는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며 자녀들과 손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감.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할머니 '심시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를 위해 하와이에서 각자 할머니를 위해 제사상에 올리고픈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그 무언가를 찾아나서면서 각자 인물들의 대략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알게된다. 여러가지 삶의 양상들을 볼 수 있음!

중심이 되는 심시선 할머니와 그의 딸들, 그리고 손녀들의 여성서사가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 좋았음!

소설에서 심시선은 죽은 인물이지만 그의 작품이 계속 소개되고, 자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계속 회고되곤 해서 꼭 죽은 인물같지 않게 느껴졌음. ㅎㅎ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한 일가 인물들의 여러가지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재밌진 않았지만 읽고 나니 좋은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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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마음과 깊이있는 대화는 공존할 수 없다고 믿는 심시선의 말이었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한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쓰는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거야"

요새 서점에서 에세이 코너를 보며 많이 드는 생각. 작가도 이런 현상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현상에 대한 고찰인걸까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멍청하고 멍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방관은 가해의 일종이다. 가해에 대한 침묵은 가해에 대한 소극적인 동의라고 생각함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 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

정의된 개념들을 배우는 건 시작선을 앞당기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 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어른들은 기대보다 현저히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실망스러워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무지개를 찾아주고 싶어하는 무지개 섬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예민하고 날이 서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공기가 따갑다고 표현했다. 공감이 많이 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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