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자전적 소설.
80년대 산업체학교를 다니며 공장에서 일하는, 서울 가리봉동의 한 외딴방에 오빠들과 외사촌 언니와 함께 살아가는 16살-19살의 '나'의 이야기이다.
80년대의 '나'와 현재(95년?)의 '나'가 얽혀서 서술되어 있음.
소설이면서 기승전결은 없지만 재밌게 잘 읽었음
소설 내에서도 나오지만, '재미있다' 라고 표현하기엔 오해가 있을 수도 있음.
줄거리가 흥미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담담한 문체가 흡입력 있으며
묘사가 예쁘기도 하다가 슬프기도 하다가 무섭기도 하다.
80년대를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 시대의 노동자이자 학생인 '나'에게 이입될 만큼
표현이 사실적이고 섬세했다.
나는 기승전결이 있는 서사를 좋아하지만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상당히 매력있었음.
아래는 내가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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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꼈다. 내게는 그때가 지나간 시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낙타의 혹처럼 나는 내 등에 그 시간들을 짊어지고 있음을, 오래도록, 어쩌면 나, 여기 머무는 동안 내내 그 시간들은 나의 현재일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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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금지구역이 많았듯이 도시엔 사람 사이에 금지구역이 많았다. 우리를 업수이 여기는 사람, 다가가기가 겁나는 사람, 만나면 독이 되는 사람... 그러나 그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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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사이의 말이란 진희의상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사이의 대화는 본뜬 옷감과 바느질이 된 옷 사이에 흐르고 있었는지도. 휴식시간에 그 사람이 입술에 무는 담배에 그녀가 불을 붙여주는 사이에, 혹은 바느질에 몰두해 있는 그녀의 머리에 묻어 있는 실밥을 떼어내주는 그의 손길 사이에.
......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무명의 말들이 그들 사이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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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밤중에 잠이 깨면 베개를 들고서 오빠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스며들었다. 날이 갈수록 투명해지는 불안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던 때는 그들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 때였다. 영원히 나를 버리지 않을 내 피붙이들의 숨소리가 내 가슴속으로 가득 들어차면 그때야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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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직한 비밀이 내가 죽은 후에 알려질 때를. 알려지는 건 괜찮은데 왜곡되는 것은 두려웠다. 비밀이 왜곡되지 않으려면 발설하는 자의 삶보다 내 삶이 더 두껍거나 아니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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