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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정말 오랜만의 감동적이고 감성적인 소설이었다.

경마장에서 말을 타기 위해 만들어진 기수 로봇 콜리,

경주마로서의 수명을 다해 곧 죽을날만 기다리는 말 투데이,

로봇을 좋아하지만 친구 사귀기는 서툴고 언니와 엄마에 대한 부채감을 지고 살아가는 연재,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이끌고 매번 경마장에 가는 은혜,

죽을 위기를 이겨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꿈을 포기한 채 두 딸을 키우며 버티는 보경.

등장인물들을 보면 알겠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다양하다. 그만큼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도 다양하다.

감정을 느끼고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 등 오로지 감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인권이라든가, 동물 복지에 대한 생각과 같은 사회 문제 또한 반영되어 주인공들이 겪는 일에 현실성과 공감성을 부여한다.

사람은 다 비슷하다지만
너무나도 다른 입장에서 살고있는 인물들에서
보편적인 감정을 뽑아내어
어루만져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정말정말 감동받았다~!


다양한 하늘이 존재했지만 콜리는 그중에서도 구름이 선명한 날을 좋아했다.
여기서 '좋아했다'는 더 자주, 더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봤다는 뜻이다.

 

 

 

세상이 조금만 더 자신을 남들처럼만 대해준다면 은혜는 사이보그따위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몇 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세상은 연재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탄생시켰다.
그제야 삶의 격차가 어느 틈을 비집고 생겼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연재의 균열이라기보다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보다 더 먼 부모님의 삶 어디에선가부터
천천히 시작된 균열일 것이다. 연재가 스스로 절대 여밀 수 없는 크기로 말이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거지."

 

 

 

한 해 1만여 마리 정도의 동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을 감았다.
인간도 살기 비좁은 땅이라는 이유로 동물들이 사라져야 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생태계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모두가 입을 모아 동물의 생존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중 대부분의 인간들이 여전히 개 공장에서 태어나 펫숍으로 팔려 온 강아지를 구매했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를 발로 찼다. 털이 뭉친 노견은 너무 못생겼다 느꼈으며
갓 태어나 젖도 떼지 못한 개만이 가족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했다.
고양이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없이 집에 들였다가 털이 너무 많이 빠지거나 아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유기했고
같은 케이지 안에 넣어 서로 죽이는 햄스터를 징그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으며
수온과 염분을 맞추지 못해 떼죽음당한 열대어를 변기통에 흘려보냈다.
새를 위해 새장을 하늘이 보이는 베란다에 놓았고
그 해에 유행했던 동물들은 반짝 개체수를 늘렸다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가축이 된 짐승과 인간과 친한 몇몇의 동물들 빼고 모든 동물들은 몇 세기 안에 사라질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었다. 복희가 말했던 이 행성에서의 동물들의 위치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거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게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길 때 사용되던데. 그런데 참 이상한 비유예요.
왜 꼭 절망의 상황에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누구에게 먼저 줄 거냐는 비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아쉽다.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은 지 오래돼서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쉬움에는 약간의 설움이 섞여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아쉽다는 단어를 꺼내면서, 아쉬움에 면역되지 않은 마음이 설움에 정복당하는 듯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울었다가는 지수에게 평생 놀림을 받을 것 같았으므로 연재는 꾸역꾸역 참았다.

 

 

 

 

연재는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어흐흑

따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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