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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엔 근대 로맨스 소설인가 했는데... 아니었고..
그럼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가 했는데 아니었고...
머랄까 근대를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의 서사와 투쟁기라고 보면 될까 ..
배움이 길지는 못하였으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싶어하고,
일제강점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독립하고자 하는 마음을 느꼈으며,
고무공장에서 직접 일하며 불평등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끼고
대의가 있지는 않았으나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였다.
뒤에 사진이랑 기사같은 것이 나오는 걸 보니
아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 것 같다.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있으며 전개가 속도감 있고 사투리와 옛날 말씨가 매우 실감나서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가만 보니 문창호에 손가락 둘레만한 구멍이 대여섯 개 나 있다.
그리 들어온 햇빛 한 줄기가 전빈의 눈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주룡은 손 하나를 뻗어 전빈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준다.
눈을 감은 채 깊은숨을 내쉬는 전빈을 주룡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뜬금없이 어머니에게 들은 실없는 물음이 그 얼굴을 보는 사이 떠오른다.
통화현에서 곱기로 으뜸가는 것이 무엇인지 나 알았소.
그것은 내 서방. 이 생각에 주룡은 의기양양해진다.
서방만 한 게 없다.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국가에 살기를 바랍니다.
임자가 이런 사람이어서 나는 좋았에요.
주룡은 바로 답하지 못한다. 그런 말 말지.
이미 한 번 버린 아내에게, 이제는 아주 두고 떠날 사람에게 그리 다정한 말은 말지.
데리고 떠나지 말지. 정 주지를 말지. 첫날밤에 소박을 맞히지. 이럴 바에는.
주룡은 손을 내밀어 전빈의 얼굴을 감싼다.
부모를 따라서 이주하고, 시집을 가래서 가고, 서방이 독립군을 한대서 따라가고,
그런식으로 살아온 주룡에게는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주룡이 말할 때는 미심쩍고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던 회원들이 달헌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에 슬그머니 짜증이 나려 하는 것을 꾹 참으며 주룡도 달헌에게 박수를 보낸다.
"시방까지 배운 바론 노동자가 으뜸이구 근본 되는 계급인데
실지로는 에리뜨들이 계도와 계몽의 대상으로 보구 있다. 이거이 최근 나의 불만입네다."
우습지 않습니다.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당신 아주 탁월한 사람입니다.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같습니다. 본때를 보여주시오. 나 따위 것 우습게 여겨버리시오. 알겠소?
주룡 씨 이미 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부재중인 동안에도 모임에 빠짐없이 출석하고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기만적인 말처럼 들리겠으나 나는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주룡 씨처럼은 할 수 없습니다.
여성 고무 직공의 당사자성을 흉내 내거나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룡 씨는 얼마든지 나의 몫을 가져갈 수 있지요. 사상이니 이론이니 하는 것은 배워가면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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