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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셀러라 봤음.
청소년문학에 어울리는 이야기이다.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아이들을 키우는 센터.
그 센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가 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면접을 실행함
parent+interview= paint
부모가 된다는 것,
가족으로 산다는 건 어떤건지 되돌아본다.
심신이 지칠 때 가볍게 읽을만한 책.





"아이는 부모의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들 같아요"




"대부분 예행연습없이 부모가 되잖아요"





모든 어른의 가슴속에는 자라지 못한 아이가 살고 있다고 했다. 여자의 가슴속에 발레를 끔직하게 싫어하는 열 살 아이가 살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아닌 부모 꿈의 대리인으로 살아가는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이 대리인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내가 엄마에게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이 필요했듯이 엄마 역시 나로부터 독립이 필요했다는 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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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나는 이 구절 하나만 보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이 구절이 너무 좋아서 ㅎㅎ 

고등학생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반 아이를 찔러 살해한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그리고 살해된 학생의 어머니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초반에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다른 소설들처럼 내용이 시간순으로 서술되지 않아서 조금 헷갈렸는데,
내용이 전개되면서 원인과 결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래를 만들어내는 느낌.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여운이 남고 괜찮은 소설인것 같다.
잘 짜여지고 간결하지만 견고한 느낌이 난다. 
대화들이 간결하여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사실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압축시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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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까 우리 중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죠? 그런데 현재를 제대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사람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홀려 있으면 현재를 제대로 보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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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 들어가서 생각했어. 나는 우리집 가족들이랑은 평생 서로 이해할 수가 없겠구나. 마음이 통할 수 없구나. 그걸 열 살 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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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렇게 비열하지 않아. 되게 몸과 마음이 순결해. 너는 샤워도 오래 하고. 네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나. 
그거 베이비로션 냄새야.
그 냄새 말고, 네 냄새가 따로 있어. 좋은 냄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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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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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수도 있어. 여자가 말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과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과거로부터, 너를,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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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나리자>같은 존재였어. 이 미술관에서 꼭 보아야 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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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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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잘된 삶'인가 '잘못된 삶'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이동권' , '오줌권'에 대한 이야기 ,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존엄이란 무엇인지, 사람의 신체적 능력과 매력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에 대한 심도깊은 이야기를 해준다. 

작가의 의견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철학적, 의학적, 법적인 요소가 섞여 있어서 쉽게 읽힌다고는 하지 못하겠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삶과 입장을 이해하는데에 더 도움이 되었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장애인들을 '그들'이라고 썼다가 그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고쳤다. '그들'이라고 쓴 게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타자화 시키고 '우리'가 아닌 '그들' 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아서 고쳤다. 나는 법적이나 사회적으로는 비장애인에 속하겠지만 언제든지 장애가 생길수도 있고, 책에서 얘기하듯이 신체적 · 정신적 특성에 대해 좋은가 혹은 중립적인가 정확히 얘기하지 못하며 그것이 장애다 아니다 라고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을텐데 말이다. 

'장애'가 무엇인지 검색을 해보면,

[심리적, 정신적, 지적, 인지적, 발달적 혹은 감각적으로 신체적 기능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어, 활동을 하는 데 한계가 있거나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

라고 하는데, 이걸 보면 나도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싶다. 

 

아래는 좋은 구절

줄친 부분이 너무너무 많아서 일부분만 적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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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류의 공연에서는 자신이 그 공연에 동원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아무런 역할도 없이, 개성이나 존재감도 없이 특정 집단(장애인, 노인, 환자, 빈자, 노숙인)이 특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만 도구처럼 활용된다. 이런 종류의 공연에서 이 집단은 철저하게 추상화, 익명화, 기호화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쌍함'을 전달하는 요소들, 즉 빈곤함의 정도, 장애의 심각성,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사연으로만 존재가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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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이끌릴 때 그 사람이 나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더더욱 그에게 이끌리고, 내가 더 크게 이끌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상대방도 나에게 더 강하게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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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가 장애아이든 아니든 자녀를 아예 낳을 생각이 없었는데, 의사의 실수로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경우를 '잘못된 임신' 소송, 부모가 아이를 낳고 싶긴 했으나 장애아라면 낳지 않으려 했는데 의사가 판단을 잘못해 장애아를 낳은 경우를 '잘못된 출산' 소송, 의사의 판단이 틀려 부모가 출산한 장애아 스스로가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를 '잘못된 삶' 소송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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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어떤 신체적 · 정신적 특성이 좋은가 혹은 중립적인가 그 자체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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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가 혹은 중립적인가는 결국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관이 반영되므로 시대에 따라 특정 특성의 가치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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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추구는 자신을 '무엇이 아님' 이라는 결여가 아니라 '무엇임' 이라고 적극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무엇이 '아닌 것' 이라는 소극적 형태로는 그와 같은 스타일 만들기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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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잘못된 삶을 정체성의 일부로 '수용'하는 일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정신승리'가 구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삶을 잘못되었다고 규정하고, 그로부터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야 말로 어쩌면 이러 '정신승리'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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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행동을 효과적으로 취하는 실용적 합리성의 결핍이야말로 정신질환의 한 표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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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행동을 취하냐 아니냐는 단지도덕성의 문제만 걸려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익이란 것이 자신의 생존이나 기본권과 직결되어 있는 경우 그 합리성의 결핍이란게 결국 정신질환의 한 부분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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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병리적 의식'의 바탕에 오랜 시간 누적되어온 차별이나 배제의 사소한 경험들이 납처럼 눌러붙어 있다면, 유선 씨의 '피해망상'을 그녀가 살아온 삶의 경험과 완전히 독립된 것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그저 약물로 소거하면 그만인 병적인 증상으로만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녀의 정체성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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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행동과 특성을 이해할 때 '왜?'가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단순히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어려운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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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장애인, 소수 인종, 성적 소수자 등을 대놓고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이 사람들에게 주류 집단에 동화되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커버링covering' 압력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커버링은 말하자면,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인 특성을 '티 내지 말라'는 요구다.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지만 여성의 몸이 가진 특별한 상황(생리나 출산 등)을 티내지 말 것을 아묵적,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조직 문화,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지만 장애로 인한 특성을 숨기기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이 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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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특성을 티 내면 그 특성에 대해 '그것이 벼슬이냐' 라고 비아냥대는 경우를 많이 보았음. 그걸 커버링이라고 한다는 걸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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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장애인들은 더 이상 편의시설을 설치해달라거나 장애인복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읍소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를 계단과 횡단보도의 턱에 묶어두지 말라"며, "집 안에 더이상 가두지 말라" 며 외부의 침해로부터 내 몸을 지키기 위한 '방어권'을 행사했다. 즉 무엇을 '해달라' 가 아니라 '하지 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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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길거리에 나오는 것, 즉 이동을 위한 시설물은 장애인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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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남성과 다른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고 생리를 하고 출산을 한다. 평균 신장이나 근력도 남성과 다르다. 소방관을 뽑을 때 완전히 똑같은 체력 검정을 요구하거나, 생리휴가나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여성은 사실상 해당 직역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이는 인종차별보다는 장애인차별과 유사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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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은 잘 모르겠음.. 소방관을 예로 들었는데, 소방관도 여러 업무가 있겠지만 현장에 가서 사람을 구하고 건물을 오르고 무거운 장비를 짊어져야 하는 업무의 경우, 최소한으로 요구하는 체력수준이나 근력수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성과 남성에 대해 다른 체력 검정 수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업무별로 요하는 체력 검정 기준을 다르게 두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른 예시를 들어주면 더 이해하기 좋을텐데...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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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장애인의 신체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런 종류의 미적 경험은 그 대상이 전적으로 '타자'일때에만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나의 삶과 무관한 장애인의 신체, 주름지고 지혜가 가득한 노인의 얼굴, 아침 일찍 출근해 거리를 청소하는 노동자의 땀방울 같은 것.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는 자기기만을 불러온다.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내 삶으로 들어올 때면,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충동이 우리를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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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나라들을 지배해야 할 대상, 열등한 대상으로 보면서도 미적으로 열망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과 일맥상통하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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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문제는 신체에 대한 욕망에서 그 사람의 개별적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지 않고, 결국 '예외적으로 장애인을 사랑해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그친다는 것이다. 이들은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있는 타자를 사랑하는 자신'에게 도취된다. 과연 디보티들만 그럴까? 우리는 종종 우리자신에게서도 이런 그림자를 가진 사랑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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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대상인 경우 외에도, '연애를 하는 자기자신', 혹은 '상대방에게 이렇게 헌신적인 나' 에 취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정말 꼴배기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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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콩깍지'는 어쩌면 알 수 없는 비합리적인 힘에 도취된 상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섬세하게 분별한 그 사람의 미적 요소들이 완전하게 통합된, 그 사람의 초상화가 주는 아름다움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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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사람의 초상화를 이해하고 나면 오점을 발견하더라도 더 벗어나기 힘든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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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가 개개인의 상황을 지나치게 특정한 집단 정체성으로만 축약하며, 한 사람이 여러개의 정체성과 상호 교차한다는 점을 무시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구분선들이 현대 사회에 들어 해체되고 있다는 점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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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조건이나 속성에만 집중하는 정체성 정치가 왜 나쁜지 설명해주어서 좋았다. 나는 어디에선가 사회적으로 불리한 약자일수도 있고, 또 다른 어디에선 동시에 사회적으로 유리한 강자일수도 있다. 한 인간은 여러가지 정체성을 가지며, 눈에 보이는 속성들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안다면 맥락없는 혐오를 줄이고 인간사회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텐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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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장애였던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게 될 수도 있고, 장애가 없는 사람도 노년이 되면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호 교차성과 비일관성을 정체성 정치는 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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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현실에 대한 고찰과 의견을 써낸 에세이.

책 크기도 작아서 들고 다니기도 좋고 각 소주제가 읽기 좋은 분량이라 짬날 때 읽기 좋음.

맘에드는 구절, 생각해 볼만한 구절이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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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덮어씌우는 굴레가 많으니까요. 그것에 대해 저항을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모성은 반드시 아기를 직접 낳아서 키우는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식만을 싸고도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모성은 타인을, 특히 약자를, 아우르고 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당한 희생만을 강요하고 좁은 가정의 틀에 갇히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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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물과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본다. 게다가 최종적으로 우리가 '보는 것'은 망막에 맺히는 상이 아니라 뇌를 거쳐서 오는 시각 정보로서, 거기에는 기억, 판단, 감정 등이 개입되고 결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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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행위라는 것 자체에는 주관성이 가득하다는 걸 깨닫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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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다른 뭔가를 먹거나 마시는 행위보다 자의식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커피의 맛과 향 뿐만 아니라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은근히 즐긴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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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도 멋진 곳에서 좋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충전하는 걸 보면 맞는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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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해 그저 입을 다무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나는 내 불편함을 말해야 한다. 비록 그 변화가 산을 숟가락으로 떠서 옮기는 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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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이 아니지만 나서는 것'과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는 것' 은 어떻게 다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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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한쪽에선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가고, 이 도시에도 일상의 차별과 모욕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태평하게 일상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영화를 만드는가" 식의 비평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전부터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해 그런 종류의 비평을 종종 봐왔지만, 그런 식이라면 모든 문학과 예술은 획일화된 종류만 남을 것이다. 왜 세상에 추악한 부분이 많다고 해서, 그와 함께 엄연히 존재하는 아름다운 부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만들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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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에 공정하게 돌아간다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믿음은 부당한 피해자를 볼 때 손상되어 버리고 우리는 불안에 빠진다. 이 때 그 피해자가 뭔가 원인을 제공했을것이라고 합리화해서 공정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믿음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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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또는 더 이상의 피해자를 방지하기 위해 내 편의와 즐거움을 감소시키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할 때 거기 동참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않다. 우리는 미투를 어떻게 대했나? 초기에는 충격에 휩싸여 피해자를 격려하며 가해자에 분노했지만, 미투가 사방에서 터져나오고 인기 많던 연예인 몇몇이 자취를 감추고 우리 일상의 언어와 행동거지, 관습들이 문제가 되자 피로감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석연치 않은 일부 사례를 부풀려 많은 확실한 피해자들을 포함한 미투 운동 전체를 폄하하거나 조롱하는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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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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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좀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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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는 왜 이렇게 강간 장면이 많은가?"

거기에 여자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까칠해도 결국 포용하고 인내하는 모성이나 떨어지는 꽃잎같은 스러짐의 미학을 선보이는 희생자로서 자기 목소리 없이 여성의 몇몇 정형을 재생산하면 미학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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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 폭행 등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나는 범죄들을 그린것이 무엇이 잘못됐냐는 말이 많은데, 영화든 미술이든 그 범죄 장면들을 실감나게 재현하기 위해서, 단순히 자극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피해자의 이야기, 피해자의 감정, 피해자에 입장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제3자의 입장이나 가해자의 입장에서 범죄 장면을 그려낸다면 피해자는 자극을 주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스너프 필름과 뭐가 다르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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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폭력은 우리 인간사의 일부이기에 예술이 그것을 다루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그 태도와 방식이다.

성폭력의 대상인 여성은 '아름답게 스러지는 희생자'가 아니면 이효석 단편에 나오는 분녀처럼 겁탈을 즐기게 되는, 남성의 복화술을 통해 말을 하는 인형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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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주색잡기'나 '일탈적' 삶을 치열함의 외피로 포장하던 시대는 끝나 가고 있으며 그것은 "여성을 주권과 인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타자화된 '사물'로 대하는 태도"에 공분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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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문학을 영원한 '아나키즘'이라 부른다면, 그것은 문제의 손쉬운 해결을 거부하는 '끝없는 질문태'로서의 문학을 지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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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성이 진정한 파격과 전복이 되려면 사회와 젠더 권력에서의 약자가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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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축제는 사회 통합을 위한 종교 의례가 기원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놀이 본능이 문화로 표현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 놀이 본능을 무시하고, 방송에서도 마치 명절이 민족주의 의례를 위한 날인 것처럼 "민족 고유의 명절"과 "정성 들여 치르는 차례"만 강조하니, 소셜미디어에서는 해마다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라는 소리만 늘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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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요즘처럼 눈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 꾸러미였다. 원래 크리스마스 트리는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꼬마들에게 나눠주고 사라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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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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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인이 있는 한 그 시선과 판단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걸 의식해 완전히 주체적일 수 없게 되므로, 타인의 존재 자체가 지옥이다. 하지만 또한, 처음부터 무엇이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태어난, 즉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근거를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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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모여 같은 생각이 메아리치는 '반향실'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 메아리를 즐기면서 진위에 대한 관심은 덮어둔다. 그러한 '반향실'을 깨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의심하는 토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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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향실'이라는 표현이 좋았다.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유유상종은 벗어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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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물론 타자의 강요없이 자발적으로.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러다가 '할 수 있다'가 작동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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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유명인들의 업적과 행위의 무게를 따져서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많이, 자주 보여지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즉 '보여짐'의 질보다도 양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명예'나 '평판'이 아닌 '유명세'를 추구한다. 바우만은 쉴 새 없이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의 심리가 바로 이 '보여짐'의 욕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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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공감. '유명세'를 추구한다는 말 정말 맞는 것 같다.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 '셀럽'들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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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뭐라고 쓰든지 신경 쓰지 마라. 단지 얼마나 많이 쓰는지 신경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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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 보고서에 불쾌감을 느낀 이유는, 일단 그 전제에서 사람들이 각자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이기에 앞서 국가 경제의 자원 혹은 부속품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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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육아 등 돌봄 노동은 '사랑의 노동'으로 아름답게 표현되면서도 정작 경제 시스템에서 그 실제적 중요성과 가치는 막연하게 다뤄지고 도리어 저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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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성공에 행운이 작용했음을 알 수록 다른 이들에게 관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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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었음. 

아몬드를 재밌게 읽어서 읽어봤음.

걍 연애소설임.

문장이 참 예쁘긴 하다.

상황이나 감정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 참 예쁘고 섬세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는걸까 할 정도로 감성이 대단하다.

시원시원한 전개나 갈등, 애틋함을 느낄 새는 없었고 답답한 마음들이 모여 엇갈린 가을의 교차로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화끈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냉랭하지도 않은 담담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마음을 적시는 굉장히 그림같은 문장들이 상당히 매력적인 책임!

현실적인 연애의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해피엔딩을 바란다면 읽지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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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전에 제목만 봤을 때 '시선'이라는 것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의미의 '시선'인 줄 알았는데

사람 이름이었다.

'심시선'이라는 할머니의 삶을 돌아보며 자녀들과 손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감.

남들과는 조금 다른 할머니 '심시선'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사를 위해 하와이에서 각자 할머니를 위해 제사상에 올리고픈 무언가를 찾아나선다. 그 무언가를 찾아나서면서 각자 인물들의 대략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이야기와 생각을 알게된다. 여러가지 삶의 양상들을 볼 수 있음!

중심이 되는 심시선 할머니와 그의 딸들, 그리고 손녀들의 여성서사가 주를 이루었다는 점이 좋았음!

소설에서 심시선은 죽은 인물이지만 그의 작품이 계속 소개되고, 자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계속 회고되곤 해서 꼭 죽은 인물같지 않게 느껴졌음. ㅎㅎ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한 일가 인물들의 여러가지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는데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재밌진 않았지만 읽고 나니 좋은 여운이 남는 소설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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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똑똑해서 날고 긴다 해도,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을 타고났다 해도 우리가 보는 것을 못 봐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마음과 깊이있는 대화는 공존할 수 없다고 믿는 심시선의 말이었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한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야생에서라면 도태되었을 무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사랑했다. 그 무름을. 순정함을. 슬픔을. 유약함을.

 

 

"쓰는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스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거야"

요새 서점에서 에세이 코너를 보며 많이 드는 생각. 작가도 이런 현상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현상에 대한 고찰인걸까 

 

 

가해와 피해의 스펙트럼에서 스스로가 가해에 더 가까웠음을 인정해야 했다. 멍청하고 멍하게 방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방관은 가해의 일종이다. 가해에 대한 침묵은 가해에 대한 소극적인 동의라고 생각함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지 않게 딱 정의된 개념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시작선이 다르잖아"

정의된 개념들을 배우는 건 시작선을 앞당기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

 

 

 

할머니는 욕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다만 정확하고 폭발력 있게 욕을 써야 한다고 말했었다.

 

 

 

어른들은 기대보다 현저히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실망스러워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무지개를 찾아주고 싶어하는 무지개 섬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요즘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모조리 경제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공기가 따가워서 낳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당했던 일을 자기 자식이 당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서는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한국은 공기가 따가워요."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예민하고 날이 서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공기가 따갑다고 표현했다. 공감이 많이 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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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를 경험한 글쓴이가 이야기 해주는 동거의 현실과 민낯.

애인과 동거를 한 경험담과 감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동거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약 60%정도이고 나머지 40%는 동거, 연애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이나 경험담 등임.

요약하면 동거에 관한 글쓴이의 이야기.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읽음.

별 기대없이 읽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 알맹이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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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단편소설집. 7개의 단편소설 수록.

이 소설들은 공통적으로

미숙함으로 인해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관계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주로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서술하는 식인데, 그 시절에 있었던 일, 그 때의 감정을 서술하며 관계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감정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가 섬세해서 계속되는 감정의 파도가 버거울 정도. 

한 번에 다 읽기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너무 애틋하고 섬세하여 단편 영화를 한 편 본 듯하니 하나를 다 읽고 잊혀질 때쯤 또 하나를 꺼내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ㅎㅎ

 

1. 그 여름

학창시절 첫사랑 그리고 연인관계, 식어가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 보편적이지만 그렇기에 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음.

 

2. 601,602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있을 법한, 실제로 있었을 만한 이야기. 남동생을 열렬히 원하는 집안의 여자아이와 옆집에 사는 친구이야기.

옆집 친구가 불쌍하면서도 자기 얘기가 아니지 않음에 비참함을 느낀다.

남자 아이를 낳지 못해 핍박을 받는 엄마의 곤란함을 목격하며 할머니를 싫어하게 되고, 남동생이 태어나며 역설적이지만 희망을 느낌. 사실 희망을 느꼈다는 건 내 주관적인 생각이고 '우리는 행복해질거야' 라고 주인공이 생각했지만 '정말 행복해질까' 하고 불안해 하면서 외면하려는 감정이 느껴지는 것만도 같다.

 

3. 지나가는 밤

자매 관계에 대한 이야기. 자매지만 친하지 않은 관계. 엄마의 기일때만 만나는 관계이다. 어릴 시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애증은 있고, 서로가 필요하지만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움에서 오는 애틋함이 있다. 어쩐지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에 나오는 니나 자매를 떠올리게 한다.

 

4. 모래로 지은 집

이 책에서 긴 편에 속하는 두 소설 중 하나. 상처 투성이 '공무'와 나약한 '모래', 그리고 '나'의 이야기.

상처를 둘러싼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간상을 그려내고, '나약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마음 이야기...

만남과 헤어짐, 사랑, 청춘, 용기 그리고 내가 공무와 모래를 통해 알아가는 '나'의 감정. 세사람의 성장통.

처음엔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소설이었는데 읽어갈수록 세 사람의 캐릭터에 스며들어 애틋한 감정이 느껴졌던 소설이다.

 

5. 고백

학창시절 친구와 있었던 이야기를 고백함.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레즈비언임을 밝혔을 때, 다른 친구와 '나'의 반응으로 인해 친구가 자살하고, 그 이후 틀어진 관계와, 다시 재회했을 때의 감정을 고백한다.

 

6. 손길

나를 거두어주었던 어렸지만 반짝였던 숙모에 대한 이야기. 예전 나를 잠시나마 키워주었던 숙모의 나이가 되어 느끼는 감정들과, 이별과 재회를 그려내었음.

 

7. 아치디에서

'하민'과 '랄도' 두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지만 사랑은 아니다. 두 사람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우정이라기엔 너무 애틋하고도 건조하다. 사랑의 양상이란 어떤것일까. 삶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잠시 정체된 지점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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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라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 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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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골목 끝까지 걸어가 바닥에 침을 뱉었어. 입속에 고인 초콜릿의 단맛이 불쾌하게 느껴져서. 그 단맛이 입 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서. 그 때 나는 사랑이라는 말이 참 더럽다고 생각했어. 더러운 말이라고.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을 경멸하고 또 경멸할 거리고 다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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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걸까. 그 때의나는 생각했다. 겉으로는 울고 있는 모래를 달래면서도 속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모래를 단죄했다.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 다시 들어가놓고 나와 공무 앞에서 외롭다고 징징대다니. 모래의 등을 두드리며 나는 생각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진짜 고통이 있는데, 고작 이런 일로 애처럼 울고 있다니.

(다른 사람의 슬픔을 단죄한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겉으로는 타인을 달래주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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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전하지 못했다. 어느 한 사람 울지도 못하고, 완성되지 못한 문장만을 조금씩 흘려보낼 뿐이었다. 나는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후 몇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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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몰아붙이던 남자친구에게조차 나는 의존했었던 거지. 내가 내 힘으로 제대로 서 있지를 못해 자꾸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했던 거야. 내가 기대어 서 있는 벽이 자꾸만 무너지고 벽이 아니라 나를 해치는 돌덩이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본인을 갉아먹는 관계인걸 알면서도 쉽사리 놓지 못하는 저 마음이 공감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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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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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 것인지 여자로부터 배운 셈이라고 혜인은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은 그런식으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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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다'라는 동사에 '열심히' 부사가 붙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민이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자기를 몰아붙이듯이 살았다는 것인지, 별다른 재미 없이 살았다는 것인지, 열심히 산다는 게 그녀에겐 올바르다는 가치의 문제라는 것인지, 삶의 조건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것인지 말이다. 그녀가 그 말을 할 때, 그래서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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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닭 농장, 돼지 농장, 개 농장에서 일하며 겪은 일들, 생각들을 쓴 책이다.

동물 사육의 실태와 동물 복지에 대해 생각하게 함.

세 동물을 기르는 형태의 공통점은 발만 겨우 디딜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동물 여러마리를 꽉꽉 채워서 기른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동물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고 결국 폐사로 이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이다.

비록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이지만 그런 동물들에게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충분한 공간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보장을 해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짚어줬던 것이었다. 항상 '동물복지'하면 자유롭게 걷거나 뛰고 잘 수 있는 환경에서 동물들을 기르는 것만 생각하곤 했었는데, 동물들이 충분히 자기 삶을 누리지 못하고 인간에 의해 특정한 시기에 도살당한 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었다.

이런 것 외에도 고기로서 기르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의 경계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며, 동물 농장 사업에 얽힌 이야기들도 알 수 있다.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는 사료의 원료가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 개 농장에서 개들의 밥으로 사용된다는 건 생각치도 못했다. 개 농장에서 짬밥은 개밥으로서 사용되고, 짬밥 사업 또한 수익을 창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농장 사업 구조가 단순히 독립된 한 사업으로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종종 다른 이해관계와 얽혀 있기도 하다는 걸 알게되었는데, 그 안에서 먹고 살기위해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들을 보며 손가락질 하는 것은 선민의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업 측면 외에도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몸이 고된 농장 일 특성상, 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뿐더러 외국인 노동자가 태반인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조금) 엿볼 수 있고 매매혼에 대한 언급도 조금 있다. 

아무튼 알게 되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되는 것도 많은 책이니 읽어볼 만 하다. ~~~ 그럼 20000

아래 사진은 돼지 스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본 사진.

돼지 농장에서는 아래와 같은 돼지 스톨에 돼지를 사육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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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에 대해 수치 위주로 접근하게 되면 금방 이해하고 또 금방 잊는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에 무너졌고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당했으며 재산 피해액이 2,700억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읽은 사람은 자신이 이 비극을 '안다'고,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대상을 파악했다는 감각은 내적으로 형성된 불안감을 해소시키며 이때 생긴 만족감은 계속해서 의심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을 감소시킨다. 이해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계속해서 다른 세상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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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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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계 수평아리들에게 매몰 처분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은 쓰레기차가 여러분이 집 앞에 내놓은 쓰레기 봉지를 수거해 매립지에 쏟아붓는 것만큼이나 규칙적이고 또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병아리들에겐 방송사의 카메라가 찾아가는 일도 없고 어떠한 경악도 우려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 병아리들도 똑같이 비명을 지르고 살려고 발버둥 치지만 말이다.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은 연민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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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차별은 혐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우리 편'에 대한 사랑. 

차별에 구체적인 형태를 제공하는 것은 혐오지만 그것에 끈질긴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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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떼를 폐기시킬 땐 느끼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개에게는 고함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느꼈다는 점은 인간 사회 속에 자리잡은 동물들이 온전한 삶을 누릴 '자격'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를 암시하는 듯 보인다.

먼저 그들은 상품이 되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아주 비싼 상품이 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론 인간의 '친구'(그러니까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상품)가 되어야 한다. 너무 맛있거나 아니면 너무 못생겨서 '친구'가 될 가능성이 없는 동물들의 삶은 앞으로도 고달플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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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계 농장의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은 공장식 농장의 동물이 이중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첫번째는 가장 일반적인 제약인 공간의 감옥이다. 동물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이런저런 노력들은 이 첫 번째 제약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식용 동물은 인간의 필요성에 따라 죽는 시기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두 번째, 바로 시간의 감옥에도 갇혀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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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이 동물 복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과 그렇게 생산된 고기를 즐길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건강하게 동물을 길렀다 해도 그 고기가 시장에서 외면당한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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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도계 방식도 그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부작용이 아무리 심각하다고 해도 개 도살방식에 비할 바는 결코 아니다. 닭은 전기로 기절시키는 것이고 개는 말 그대로 전기로 지져서 죽이는 것이다. 두 경우가 똑같다고 하는 것은 비행기가 지면에 내려앉았다고 해서 착륙과 추락이 똑같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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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사람들은 언제나 스스로의 선량함을 의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선량한 사람이 된다.

(폴 오스터, <<폐허의 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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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극에 참여하려 했다간 역으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이라도 관여할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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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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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이라크를 점령하며 무슬림이 아닌 민족에 대해 가한 집단학살을 다룬 집단학살 피해자의 자서전.

약 400페이지 쯤 되지만 하루만에 금방 읽었다

주인공이 IS로부터 겪었던 강간과 폭력, 그리고 주인공의 집단에 대한 학살 등이 묘사되어있으며
IS가 이라크를 점령하는 과정과 전쟁, 정치적 양상들이 이라크 내에서 살았던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다.
IS가 자행했던 비인각적인 일들은 과거 왜놈들 제국주의 시절 그들이 저질렀던 만행과 닮아있었다.

21세기 지구촌 어느 한 쪽에서는 아직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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